추천 게시물

사람에게 암내가 나는 이유를 진화적 관점과 생물학적 원인으로 풀어보자

목차

인간은 시각과 청각에 크게 의존하는 동물이기에 흔히 후각은 퇴화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19세기 학자들은 인간을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동물로 분류했지만, 현대 과학은 인간의 후각 신경세포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인간이 전신의 털을 잃어버린 매끈한 피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겨드랑이와 같은 특정 부위에는 굵은 털을 남겨두고 그곳에서 독특한 냄새를 풍기도록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암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단순한 위생 문제가 아니다. 이는 수만 년의 시간을 관통해 온 인류 진화의 흔적이자, 고도로 설계된 생물학적 신호 체계다. 도대체 왜 우리는 냄새가 나도록 설계되었을까?

암내의 진원지 아포크린선의 비밀

우리 몸에는 크게 두 종류의 땀샘이 존재한다. 하나는 체온 조절을 담당하는 '에크린선'이고, 다른 하나는 냄새의 근원이 되는 '아포크린선'이다. 에크린선에서 나오는 땀은 99%가 물이며 냄새가 거의 없다. 인간이 사바나 초원에서 사냥을 하기 위해 발달시킨 냉각 시스템이다.

반면 아포크린선은 다르다. 겨드랑이, 생식기 주변 등 특정 부위에만 분포하는 이 땀샘은 사춘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활동을 시작한다. 여기서 나오는 분비물은 우유 빛깔을 띠며 끈적하고, 단백질과 지방산 등 영양분이 풍부하다. 중요한 점은 아포크린선에서 갓 나온 땀 자체는 냄새가 없다는 것이다. 냄새는 이 영양분을 '요리'하는 미생물에 의해 탄생한다.

피부 위의 요리사 미생물과의 합작

겨드랑이는 미생물들에게 있어 거대한 열대우림과 같다. 따뜻하고 습하며, 아포크린선에서 영양분까지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맡는 암내는 바로 이 미생물들이 땀 속의 성분을 먹고 분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부산물이다.

관여 미생물 냄새의 특징 작용 원리
코리네박테리움
(Corynebacterium)
시큼한 냄새, 치즈 냄새 지방산을 분해하여 휘발성 유기 화합물을 생성
스타필로코커스 호미니스
(S. hominis)
양파 냄새, 유황 냄새 황(Sulfur) 화합물 결합을 끊어 강력한 악취 유발

특히 스타필로코커스 호미니스라는 균은 땀 속에 포함된 황 화합물을 분해하여 아주 적은 양으로도 강력한 양파 썩은 냄새를 만들어낸다. 인간은 냄새의 재료를 제공하고, 박테리아는 그것을 가공하여 공기 중으로 퍼뜨리는 공생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한국인에게 암내가 적은 유전적 이유

흥미롭게도 전 세계 모든 인류가 똑같은 냄새를 풍기지는 않는다. 특히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냄새가 나지 않는' 민족으로 손꼽힌다. 여기에는 ABCC11 유전자라는 결정적인 열쇠가 있다.

이 유전자는 아포크린선 세포 안의 냄새 원인 물질을 땀샘 밖으로 퍼올리는 펌프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인의 대부분은 이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펌프 기능이 멈춰 있다. 냄새의 재료가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 박테리아가 분해할 것이 없고, 자연스레 암내도 거의 나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유전자는 귀지의 상태도 결정하는데, 암내가 나는 사람은 끈적한 귀지(wet earwax)를, 냄새가 없는 사람은 마른 귀지(dry earwax)를 가진다.

왜 냄새가 사라졌을까?
학계에서는 추운 기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땀 분비를 줄이려다 보니 함께 선택되었다는 '한랭 기후 적응 가설'과, 냄새가 없는 마른 귀지 형질이 감염병 예방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병원균 저항성 가설'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진화적 관점에서 본 냄새의 기능

그렇다면 냄새는 왜 애초에 존재했을까? 동아시아인에게서 사라졌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류의 조상에게는 이 냄새가 생존에 필수적인 기능이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유전적 다양성을 위한 배우자 탐색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은 냄새가 유전적 적합성을 판단하는 지표라는 것이다. 유명한 '땀 묻은 티셔츠 실험'에 따르면, 여성은 자신과 면역 유전자(MHC) 구성이 가장 다른 남성의 체취를 매력적으로 느낀다. 서로 다른 면역 체계를 가진 배우자를 만나야 자손이 더 강력한 면역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무언의 신호

체취는 언어가 없던 시절의 소통 수단이기도 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도 냄새만으로 어머니를 찾아 젖을 문다. 또한, 인간은 공포를 느낄 때 식은땀을 흘리는데, 이 땀 냄새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 소리 지르지 않고도 위험을 알리는 '화학적 경보'였던 셈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인식 변화와 결론

과거 생존과 번식의 핵심 신호였던 체취는 현대 사회에 들어서며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20세기 초 위생 관념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데오도란트 마케팅은 체취를 사회적 실패나 게으름의 상징으로 낙인찍었다. 우리는 이제 본능적인 '후각적 소통'보다 사회적인 '청결함'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결국 암내는 우리 몸에 새겨진 진화의 화석이다. 비록 지금은 씻어내고 감추어야 할 것이 되었지만, 그 냄새 속에는 수만 년 동안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고 사랑하며 생명을 이어온 인류의 치열한 역사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