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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이 치아를 부식시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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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를 녹이는 달콤한 유혹, 설탕과 산성 화합물의 영향

"단거 많이 먹으면 이 썩는다"라는 말은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정확히 무엇이 우리의 단단한 치아를 무너뜨리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설탕이 치아에 달라붙어서 썩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입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훨씬 더 정교하고 화학적인 전쟁과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치아를 약하게 만드는 것은 당분에 의한 '산성화'가 맞다. 하지만 이 과정은 단순히 산이 닿아서 녹는 1차원적인 현상이 아니다. 우리 입속의 세균, 우리가 먹는 탄수화물, 그리고 치아를 보호하려는 타액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공방전을 이해해야만 진정으로 충치를 예방할 수 있다. 오늘은 치의학적으로 밝혀진 충치의 원리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본다.


설탕이 치아의 최대 적인 이유

우리가 섭취하는 탄수화물은 크게 설탕(자당), 포도당, 과당, 전분 등으로 나뉜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악당'은 단연 설탕, 즉 자당(Sucrose)이다. 왜 유독 설탕이 문제일까.

입안에 사는 충치균인 뮤탄스균(S. mutans)에게 설탕은 최고의 먹잇감이다. 이 세균은 설탕을 분해하여 즉각적으로 강력한 산(Acid)을 뿜어낸다. 하지만 설탕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접착제'를 만든다는 점이다.

뮤탄스균은 설탕을 원료로 끈적끈적한 '글루칸'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낸다. 이 끈적한 물질은 세균이 치아 표면에 착 달라붙게 만들고, 세균끼리 뭉쳐 단단한 집(바이오필름, 치태)을 짓게 도와준다. 이 집은 마치 요새와 같아서 침이 들어와 산을 씻어내는 것을 막고, 세균이 뿜어낸 산을 치아 표면에 가둬둔다. 즉, 설탕은 산을 만들 뿐만 아니라 그 산이 치아를 가장 잘 공격할 수 있도록 돕는 건축 자재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탄수화물 종류 특징 위험도
설탕 (자당) 끈적한 세균막을 형성하고 산을 치아에 가둬둠 매우 높음
포도당/과당 산을 만들지만 끈적한 막 형성은 약함 높음
전분 (녹말) 침에 의해 분해되어야 하므로 속도가 느림 낮음

양이 아니라 빈도가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단 걸 별로 안 먹는데 왜 충치가 생길까?"라고 의아해한다. 이때 점검해봐야 할 것은 섭취한 총량이 아니라 '얼마나 자주 먹는가'이다.

당분이 입에 들어오면 불과 5분 안에 입속 환경은 산성으로 변한다. 다행히 우리 몸의 타액(침)은 이를 중화시켜 다시 정상 상태로 돌려놓는 능력이 있다. 문제는 이 회복 과정에 약 30분에서 1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만약 밥을 먹고 커피믹스를 마시고, 1시간 뒤에 초콜릿을 먹고, 또 조금 뒤에 음료수를 마신다고 가정해보자. 치아는 회복될 틈도 없이 하루 종일 산성 공격을 받게 된다. 이를 '스테판 곡선'이라고 하는데, 식사 때 한 번에 왕창 먹는 것보다 적은 양이라도 찔끔찔끔 자주 먹는 것이 치아에는 훨씬 치명적이다. 입안이 쉴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치아가 녹아내리는 탈회 현상의 원리

그렇다면 산성 환경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돌처럼 단단한 치아를 녹이는 것일까. 이를 전문 용어로 '탈회(Demineralization)'라고 한다. 치아 표면인 법랑질(에나멜)은 칼슘과 인으로 구성된 아주 단단한 결정 구조(하이드록시아파타이트)를 가지고 있다.

입안이 산성(pH 5.5 이하)으로 변하면, 수소 이온이 많아진다. 이 수소 이온들은 치아 주변의 칼슘과 인을 뺏어가려는 성질이 있다. 자연계는 언제나 균형을 맞추려 하기 때문에, 주변 환경의 부족해진 미네랄 농도를 채우기 위해 치아 표면의 결정에서 칼슘과 인이 빠져나오게 된다. 쉽게 말해 산이 직접 치아를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산 때문에 환경이 변하자 치아 스스로 구성 성분을 내놓으며 허물어지는 것이다.

초기 충치가 하얗게 보이는 '백색 반점'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치아 표면에서 미네랄이 빠져나가면 미세한 구멍들이 생기는데, 이 구멍들 때문에 빛이 산란되어 투명했던 치아가 불투명한 흰색으로 보이게 된다. 이는 치아 구조가 푸석푸석해졌다는 신호다.


방패를 강화하는 불소의 역할

치아는 무방비 상태가 아니다. 침 속에 있는 칼슘과 인 성분은 빠져나간 자리를 다시 메워주는 '재광화' 작업을 부지런히 수행한다. 여기서 불소(Fluoride)가 등장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불소는 단순히 치아를 코팅하는 것이 아니다. 불소는 치아의 결정 구조 안으로 들어가 기존 구조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산에 강한 '불소아파타이트'라는 새로운 결정을 만들어낸다. 이는 마치 나무 방패를 강철 방패로 업그레이드하는 것과 같다. 불소가 결합된 치아는 더 강력한 산성 환경(pH 4.5)에서도 녹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충치 예방에 불소 치약이 필수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건강한 치아를 유지하기 위한 생활 습관

당분에 의한 산성화가 치아를 약하게 만드는 것은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다. 세균은 당분을 먹고 산을 배설하며, 그 산은 물리화학적 법칙에 따라 치아의 미네랄을 빼앗아 간다.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첫째, 끈적하고 달콤한 간식(젤리, 카라멜 등)을 피한다. 둘째, 간식을 먹더라도 횟수를 줄여 입안이 회복할 시간을 준다. 셋째, 불소를 이용하여 치아의 방어력을 높인다. 치아와 세균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적(당분)을 알고 아군(불소와 침)을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