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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침습 라만 혈당 측정 기술 어디까지 도달했나?

목차

바늘 없는 혈당 관리, 라만 분광법이 여는 새로운 미래

당뇨병 환자에게 매일 반복되는 채혈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이자 일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당뇨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손가락을 찌르는 채혈침(Lancet)이나 피부에 바늘을 꽂아야 하는 연속 혈당 측정기(CGM)를 대체할 기술에 대한 갈망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지난 40여 년간 수많은 기업과 연구소들이 '비침습 혈당 측정(NIGM)'이라는 성배(Holy Grail)를 쫓았으나,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최근 광학 기술과 인공지능의 결합으로 인해 그 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기술이 바로 '라만 분광법(Raman Spectroscopy)'이다. 본 글에서는 라만 분광법이 왜 차세대 혈당 측정의 표준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현재 기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심도 있게 살펴본다.

[Image of Laser scanning on skin structure]

피부 조직 내 포도당 분자와 반응하는 라만 레이저의 원리

빛으로 읽어내는 분자의 지문

혈당을 빛으로 측정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광학 기술은 생체 조직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물(Water)'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혔다. 적외선(IR) 흡수 방식의 경우, 물 분자가 빛을 강력하게 흡수해버려 정작 측정해야 할 미량의 포도당 신호를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난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바로 라만 분광법이다. 라만 산란은 빛이 물질을 통과할 때 분자의 고유한 진동 에너지에 따라 파장이 변하는 현상을 이용한다. 흥미로운 점은 물 분자가 라만 산란에서는 매우 약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덕분에 라만 분광법은 물의 방해를 거의 받지 않고 포도당 분자 고유의 '화학적 지문(Chemical Fingerprint)'을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특히 파수(Wavenumber) 1125 cm⁻¹ 대역에서 나타나는 피크는 포도당 검출의 핵심 지표다. 이 신호는 생체 내 다른 성분과의 중첩이 적고 농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마치 지문처럼 포도당의 존재를 증명한다.

피부 속 진실을 찾는 기술적 도전

이론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라만 분광법도 실제 사람의 피부에 적용할 때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다. 피부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땀과 피지가 분비되며, 두꺼운 각질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각질층은 혈관이 없어 혈당 정보를 담고 있지 않으면서도 강한 잡음 신호를 만들어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공초점(Confocal)' 기술과 '임계 깊이(Critical Depth)' 설정이다. 피부 표면의 불필요한 신호를 걸러내고, 혈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간질액(ISF)이 풍부한 진피층(약 250µm 깊이)의 신호만을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것이다. 덴마크의 RSP Systems와 같은 선도 기업들은 이 기술을 통해 측정 정확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혈관을 직접 타겟팅하는 기술도 개발되었다. 삼성전자와 MIT 연구진이 주도한 '비침습 혈관 시각화(VVT)' 기술은 피부 아래 미세 혈관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레이저 초점을 맞춘다. 이는 간질액 측정의 단점인 '혈당 변화 시차(Lag Time)' 문제를 해결하고, 통계적 추정이 아닌 실제 포도당 분자를 직접 관측한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인공지능이 완성하는 정확도

하드웨어적 진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소프트웨어, 즉 데이터 분석 기술이다. 라만 스펙트럼 데이터에는 포도당 신호뿐만 아니라 단백질, 지질, 그리고 피부 자체의 형광(Fluorescence) 등 수많은 잡음이 섞여 있다. 여기서 순수한 혈당 정보만을 추출하는 것은 모래사장네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

과거에는 부분 최소 자승법(PLS)과 같은 통계적 기법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딥러닝(Deep Learning)이 도입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합성곱 신경망(CNN) 등의 AI 모델은 개인마다 다른 피부 특성과 환경적 변수를 학습하여, 마치 숙련된 의사처럼 노이즈 속에서 유의미한 패턴을 찾아낸다. 덕분에 잦은 보정(Calibration) 없이도 10일 이상 정확도를 유지하는 기술적 성과가 보고되고 있다.

상용화 경쟁과 시장 전망

2024년과 2025년은 라만 기반 비침습 혈당 측정기가 연구실을 벗어나 시장에 진입하는 원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장 앞서 있는 기업들의 기술 수준은 놀라울 정도다.

RSP Systems는 임상 시험에서 MARD(평균 절대 상대 차이) 11~14% 수준의 정확도를 입증했다. 이는 현재 시판 중인 침습적 CGM 기기들의 성능에 상당히 근접한 수치다. 또한 한국과 미국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스타트업 Apollon(아폴론)은 기기의 초소형화에 성공하여 CES 2025에서 혁신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삼성전자 역시 갤럭시 워치 생태계에 이 기술을 통합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기술 방식 주요 특징 및 장점 해결 과제
라만 분광법 물의 간섭이 적고 포도당 특이성이 매우 높음 미약한 신호 증폭 및 기기 소형화
중적외선(MIR) 포도당 흡수 피크가 강하게 나타남 수분 흡수 간섭이 매우 심함
근적외선(NIR) 광원이 저렴하고 피부 투과 깊이가 깊음 특이성이 낮고 온도 등 환경 영향 큼

주요 비침습 혈당 측정 기술 비교

완전한 자유를 향한 마지막 관문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손목 위에 올라갈 만큼 기기를 소형화하면서도 배터리 효율을 유지해야 하고, 레이저 안전성 규제를 충족해야 하며, 대량 생산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이러한 장벽들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비침습 혈당 측정 기술은 단순한 편의성 개선을 넘어, 당뇨병 환자들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채혈의 공포 없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세상, 라만 분광법이 그 길을 밝히고 있다. 다가오는 2025년, 우리는 의료기기 역사의 새로운 장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