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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자가, 대기업 김 부장은 왜 갑자기 숨이 막혔을까? (공황장애의 원인과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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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러울 것 없는 김 부장의 숨겨진 공포
서울 마포구의 번듯한 30평대 아파트,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의 팀장 명함, 그리고 유학 간 자녀까지. 40대 중반의 김 부장은 우리 사회가 정의하는 '성공한 인생'의 전형이다. 치열한 승진 경쟁에서 살아남았고 부동산 상승기에 내 집 마련도 성공했으니, 주변에서는 그를 걱정 없는 사람이라 부른다. 하지만 김 부장에게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아니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 하나 있다.
어느 평범한 출근길이었다. 빽빽한 만원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치솟았다. 단순히 사람이 많아서 답답한 느낌과는 차원이 달랐다.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심장은 흉곽을 뚫고 나올 듯 요동쳤다. "이대로 여기서 죽는구나"라는 공포가 뇌를 지배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결국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향했지만, 검사 결과는 허무했다. 심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진단명은 현대인의 예고 없는 불청객, 공황장애였다.
뇌가 보내는 거짓 화재 경보
김 부장이 겪은 증상은 단순한 겁이나 긴장이 아니다. 의학적으로 공황장애는 뇌의 경보 시스템이 고장 나, 아무런 위험이 없는 평온한 상황을 생명이 위급한 전시 상황으로 착각하는 질환이다. 우리 뇌에는 공포와 불안을 감지하는 '편도체'라는 부위가 있다. 원시 시대에 맹수를 만났을 때 즉시 도망치거나 싸울 수 있도록 신체를 흥분시키는 생존의 파수꾼이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이 편도체가 오작동을 일으킬 때 발생한다. 김 부장의 편도체는 평온한 지하철 안을 맹수 앞이라고 오판했다. 뇌의 잘못된 신호를 받은 자율신경계는 즉시 교감신경을 폭주시켰고, 아드레날린을 쏟아내며 심박수를 급격히 올렸다. 김 부장이 느낀 죽을 것 같은 공포는 착각이 아니라, 뇌가 만들어낸 아주 생생한 실체적 감각인 셈이다.
성실한 사람이 공황장애에 잘 걸리는 이유
흔히 마음이 약한 사람이 정신과 질환에 걸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오히려 성취 지향적이고 완벽주의적이며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에게서 공황장애가 자주 발병한다. 김 부장은 전형적인 'K-직장인'의 표상이다. 힘들어도 가장은 내색하면 안 된다는 책임감, 팀장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불안을 속으로만 삭여왔다.
여기에 서울 자가를 유지하기 위한 대출 이자 부담, 대기업 내부의 실적 압박, 은퇴 이후에 대한 막막함이 무의식 속에 층층이 쌓여 있었다. 억눌린 내면의 압력이 한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뇌의 회로가 과부하를 일으키며 공황발작이라는 형태로 터져 나온 것이다. 이것은 김 부장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강한 척 버텨왔기 때문에 생긴 훈장 같은 상처일지도 모른다.
드라마가 심어준 봉지 호흡법에 대한 오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공황장애 환자가 숨을 헐떡일 때 종이봉투나 비닐봉지를 입에 대고 숨을 쉬는 장면이 클리셰처럼 등장한다. 김 부장 역시 숨이 안 쉬어질 때마다 편의점에서 비닐봉지를 사서 입에 대곤 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의학적으로 권장하지 않는 행동이다.
[종이 봉투로 호흡하는 모습에 금지 표시가 된 일러스트]과거에는 과호흡으로 인해 혈중 이산화탄소가 부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으나, 현대 응급의학에서는 이 방법이 심각한 저산소증을 유발하여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숨이 막혀 공포에 질린 상태에서 입과 코를 막으면 산소 공급이 차단되어 질식감이 가중된다. 이는 공황 상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불안을 부채질하는 꼴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섣부른 자가 진단의 위험성이다. 김 부장이 느끼는 가슴 통증이 만약 공황장애가 아니라 급성 심근경색이나 기흉이었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산소 공급이 절실한 심장 질환 환자에게 봉지를 씌워 산소를 차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누군가 과호흡으로 힘들어한다면 봉지를 찾을 것이 아니라, 넥타이와 벨트를 풀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게 도와주는 것이 올바른 대처다.
과호흡을 잠재우는 4-7-8 호흡법
공황발작이 찾아왔을 때, 약물 없이 그 자리에서 뇌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검증된 방법이 있다. 바로 호흡을 조절하여 뇌의 오작동 스위치를 끄고 이완을 담당하는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날숨을 길게 쉬면 심장 박동이 자연스럽게 느려지는 원리를 이용한다.
- 4초 흡기: 코로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 7초 유지: 숨을 잠시 멈춘다. 이 멈춤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호흡 리듬을 끊어주는 역할을 한다.
- 8초 호기: 입을 작게 오므리고 '후-' 소리를 내며 아주 천천히 내뱉는다. 들이마시는 것보다 두 배 길게 내뱉는 것이 핵심이다.
불안에서 벗어나 현실 감각을 찾는 그라운딩 기법
공황 상태에 빠지면 온 신경이 '터질 듯한 심장'과 '죽음의 공포'라는 내면의 감각으로 쏠린다. 이때 필요한 것이 '그라운딩(Grounding)' 기법이다. 말 그대로 발을 땅에 디디듯, 주의력을 강제로 외부 현실로 돌려 현재의 공간을 인식하게 만드는 인지 훈련이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오감을 활용해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이다.
- 시각: 지금 눈앞에 보이는 파란색 물건 3가지를 찾아본다. (예: 지하철 노선도, 옆 사람의 셔츠, 광고판)
- 촉각: 엉덩이에 닿는 의자의 감촉이나 발바닥이 땅을 지지하는 단단한 느낌에 집중한다.
- 청각: 지금 들리는 안내 방송 소리나 에어컨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렇게 외부 감각에 집중하면 과열된 편도체가 식고,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다시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공황은 멈춤 신호일 뿐 끝이 아니다
서울 자가에 살며 대기업을 다니는 김 부장의 공황장애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치열한 한국 사회를 살아내느라 뇌가 지쳐버린 결과다. 김 부장은 이제 드라마 속 잘못된 상식을 버리고 병원을 찾아 전문적인 치료를 받고 있다. 의사의 말처럼 이 병은 죽는 병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라는 신호임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지금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또 다른 김 부장들이 있다면 기억했으면 한다. 공황장애는 불치병이 아니며, 적절한 치료와 올바른 대처로 충분히 관리하고 극복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