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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화 혈색소 측정 시간대와 컨디션에 따라 변할 수 있나? 측정에 영향을 주는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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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 환자나 혈당 관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병원 방문일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채혈 전날 저녁을 조금만 과하게 먹어도, 혹은 잠을 설쳐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검사 결과가 나쁘게 나올까 봐 전전긍긍하게 된다. 특히 '당화혈색소(HbA1c)'는 지난 3개월의 성적표라고 불리는데, 과연 검사 당일의 시간대나 내 몸 상태가 이 수치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많은 환자들이 궁금해하는 측정 시간대, 공복 여부, 그리고 검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숨겨진 원인들을 낱낱이 파헤쳐 본다. 단순히 "괜찮다"는 위로 대신,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명확한 기준을 확인해 보자.
공복 상태가 아니어도 괜찮을까
건강검진을 받을 때 우리는 으레 '8시간 금식'을 떠올린다. 일반적인 공복 혈당 검사는 식사 직후 급격히 오르는 혈당 스파이크를 피하기 위해 철저한 금식을 요구한다. 하지만 당화혈색소는 다르다.
당화혈색소는 적혈구 속의 헤모글로빈이 포도당과 결합해 만들어진다. 이 결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혈구가 생존하는 약 120일 동안 서서히 누적된 결과물이다. 즉, 검사 직전에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신다고 해서 지난 3개월간 쌓인 당화혈색소의 비율이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미국당뇨병학회(ADA)와 대한당뇨병학회(KDA)에서도 당화혈색소 검사를 위한 별도의 금식 규정을 두지 않는다. 하루 중 어느 때나, 식사 여부와 관계없이 검사가 가능하다는 점은 바쁜 현대인이나 금식을 힘들어하는 노약자에게 큰 장점이다.
오후에 재면 수치가 더 나쁠까
우리 몸의 호르몬과 대사는 24시간 주기로 변하는 '일주기 리듬'을 탄다. 실제로 혈당 수치는 새벽과 아침, 식후에 따라 널뛰기를 한다. 그렇다면 당화혈색소도 시간대에 따라 달라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화혈색소는 하루 중 언제 측정해도 결과가 거의 일정하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침, 점심, 저녁 어느 때 채혈하더라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혈당은 춤을 추지만, 당화혈색소는 그 춤의 평균값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계절에 따른 미세한 변화다. 일반적으로 활동량이 줄고 기름진 음식 섭취가 늘어나는 겨울철에는 수치가 약간 오르고, 활동하기 좋은 가을에는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만약 겨울에 검사 수치가 0.2% 정도 올랐다면, 약물 효과가 떨어졌다기보다 계절적 요인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요약: 측정 시점의 진실
- 금식 필요 없음: 식사 여부는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 시간대 무관: 오전, 오후 언제든 편할 때 검사하면 된다.
- 계절 변동: 겨울에 약간 오르는 경향이 있으니 참고하자.
어제 잠을 못 잤는데, 검사에 영향이 있을까
"어제 부부싸움을 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거나 "잠을 한숨도 못 잤다"며 검사 결과를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수면이 부족하면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와 일시적으로 혈당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 하루의 컨디션 난조나 스트레스가 3개월의 평균치인 당화혈색소를 바꾸지는 못한다. 벼락치기 공부가 전체 학기 성적을 크게 바꾸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감기나 독감 같은 급성 질환에 걸린 상태라도 당화혈색소 검사는 유효하다. 당장 몸이 아파서 혈당이 오를 수는 있어도, 당화혈색소 수치는 지난 과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의할 점은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다. 하루 이틀 밤을 새우는 건 괜찮지만, 3개월 내내 불면증에 시달렸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만성적인 수면 장애는 실제로 혈당 조절 능력을 떨어뜨려 당화혈색소 수치를 높이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물을 안 마셔서 피가 끈적하면 수치가 높게 나올까
탈수 상태가 되면 혈액이 농축되어 피가 끈적해진다. 혹시 이 때문에 수치가 높게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기우다. 당화혈색소 검사는 혈액의 농도를 재는 것이 아니라, 전체 헤모글로빈 중에서 당분이 들러붙은 헤모글로빈이 '몇 퍼센트(%)'인지를 보는 비율 검사이기 때문이다.
혈액 양이 줄어든다고 해서 그 비율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물을 충분히 마셔주면 채혈이 수월해져 검사 과정이 편안해진다.
당화혈색소를 속이는 진짜 범인들
측정 시간이나 컨디션보다 훨씬 더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바로 내 몸속 적혈구의 상태다. 당화혈색소는 적혈구의 수명(약 120일)을 전제로 측정되는데, 만약 특정 질환으로 인해 적혈구 수명이 달라진다면 검사 결과는 엉뚱하게 나올 수 있다.
1. 수치가 실제보다 낮게 나오는 경우 (위음성)
적혈구가 제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빨리 파괴되거나, 출혈로 인해 새로운 적혈구가 급격히 만들어지는 상황에서는 수치가 낮게 나온다. 갓 태어난 적혈구들은 아직 포도당과 결합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 빈혈 (용혈성): 적혈구가 깨지는 병
- 임신: 혈액량이 늘고 적혈구 교체가 빨라짐
- 간 질환 및 만성 신부전 일부
2. 수치가 실제보다 높게 나오는 경우 (위양성)
반대로 적혈구가 잘 만들어지지 않아 늙은 적혈구만 혈액 속에 남아있다면, 이들은 오랫동안 당에 노출되었기에 당화혈색소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측정된다.
- 철 결핍성 빈혈: 여성이나 노인에게 흔함
- 비타민 B12 결핍
특히 철 결핍성 빈혈은 한국 여성에게 매우 흔하다. 혈당 관리를 잘하고 있는데도 수치가 이상하게 높다면, 당뇨약을 늘리기 전에 빈혈 검사를 먼저 해보는 것이 현명하다. 철분제를 먹고 빈혈이 호전되면 당화혈색소 수치가 뚝 떨어지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 요인 | 영향 (결과 왜곡) | 비고 |
|---|---|---|
| 공복 여부 / 시간대 | 영향 없음 | 편한 시간에 측정 가능 |
| 철 결핍성 빈혈 | 가짜 상승 (위양성) | 빈혈 치료 시 수치 하락 |
| 임신 / 용혈성 빈혈 | 가짜 하락 (위음성) | 적혈구 수명 단축 때문 |
| 비타민 C (메가도스) | 측정법에 따라 다름 | 일반 복용량은 무관함 |
영양제와 음주, 어디까지 영향 줄까
건강을 위해 챙겨 먹는 비타민이나 가끔 즐기는 술도 변수가 될 수 있다. 고용량의 비타민 C나 E는 이론적으로 단백질의 당화를 억제해 수치를 낮출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하루 1g 정도의 일반적인 복용량으로는 검사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안심해도 된다.
술은 조금 복잡하다.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은 오히려 당화혈색소가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술이 간 기능을 떨어뜨려 적혈구 수명을 단축시키거나 알코올 자체가 당 생성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즉, 수치가 좋게 나왔다고 해서 "술 마셔도 혈당 괜찮네"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건강한 조절이 아니라 간섭 효과일 가능성이 높다.
마무리하며
당화혈색소는 당뇨병 관리의 나침반과 같다. 하지만 그 나침반도 주변에 강력한 자석(빈혈, 임신, 투석 등)이 있으면 방향을 잃을 수 있다. 단순히 수치 0.1%의 등락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나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와 생활 습관을 함께 들여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검사 결과가 평소 내가 느끼는 컨디션이나 자가 혈당 측정 결과와 너무 다르다면, 기계 오류를 의심하기 전에 내 몸속 적혈구의 안부를 먼저 물어보자. 빈혈은 없는지, 혹시 복용 중인 약물이 영향을 주지는 않는지 주치의와 상의하는 것이 정확한 치료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