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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몸에 상처를 내면 기분이 좋아지는 정신 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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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몸에 상처가 나면 아파야 한다. 고통은 피하고 싶은 감각이지, 즐기고 싶은 감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놀랍게도 "몸이 아프니 마음이 편안해진다"거나 "상처를 낼 때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이나 '철없는 반항'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의학적으로 이는 비자살적 자해(Non-Suicidal Self-Injury, NSSI)라는 명확한 진단적 개념을 가진 현상이다. 죽으려는 의도 없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이 행동은, 역설적으로 '살기 위해', '고통을 견디기 위해' 선택한 뇌의 비상 대처법에 가깝다. 도대체 우리 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고통이 안도감으로 바뀌는 것일까. 그 숨겨진 기전과 해결책을 살펴본다.
아픈데 왜 기분이 좋아질까
자해를 하는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아픈 줄 모르고 한다"는 시선이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그들도 통증을 느낀다. 다만 그 통증 뒤에 찾아오는 보상이 너무나 강렬할 뿐이다. 이를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이론은 '내인성 오피오이드 가설'이다.
우리 뇌는 신체에 큰 충격이나 통증이 가해지면 이를 보호하기 위해 천연 진통제인 '베타-엔돌핀'과 '메트-엔케팔린'을 분비한다. 이 물질들은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과 구조가 유사해 강력한 진통 효과를 낸다. 흥미로운 점은 뇌가 '몸의 아픔'과 '마음의 아픔'을 처리하는 영역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즉, 자해로 인해 분비된 엔돌핀이 신체적 통증뿐만 아니라, 자해를 하게 만든 극심한 우울감이나 분노까지 일시적으로 마비시켜 버리는 것이다.
또한 '통증 상쇄 안도(Pain Offset Relief)'라는 현상도 작용한다. 극심한 통증이 멈추는 순간, 뇌는 단순한 정상 상태가 아니라 쾌락에 가까운 급격한 안도감을 느낀다. 자해를 반복하는 이들은 이 찰나의 해방감을 잊지 못해 다시 상처를 내게 된다.
단순한 습관이 아닌 뇌의 중독
많은 이들이 자해를 '마음만 먹으면 그만둘 수 있는 나쁜 버릇' 정도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알코올이나 도박 중독과 매우 유사한 뇌의 변화를 동반한다. 자해 행동이 반복되면 우리 뇌의 보상 회로는 여기에 길들여진다.
처음에는 작은 상처로도 안도감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성(Tolerance)이 생겨 더 깊고, 더 많은 상처를 내야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자해를 하지 못하게 하면 불안하고 초조하며 식은땀이 나는 금단 증상(Withdrawal)까지 겪는다. 이는 자해가 단순한 의지의 문제를 넘어선 '질환'의 영역에 있음을 시사한다.
자해 행동이 주는 위험한 신호들
- 조절 실패: 그만두려 해도 반복적으로 실패한다.
- 내성: 상처의 강도나 빈도가 점점 심해진다.
- 일상의 파괴: 흉터를 가리느라 대인관계를 피하고, 자해 생각에 몰두하느라 학업이나 업무에 지장을 받는다.
말하지 못하는 고통의 언어
심리학자들은 자해를 '말 없는 비명'이라고 부른다. 정서 조절 기능은 자해의 가장 큰 목적이다. 마음속의 압력이 터질 것 같을 때, 자해는 마치 압력밥솥의 김을 빼는 배출구 역할을 한다. 너무 힘들어 감각이 마비되고 멍해지는 해리 상태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통증을 추구하기도 한다.
때로는 타인에게 자신의 고통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관심병"이라는 비난은 위험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태임을 몸으로 보여주는, 어쩌면 마지막 구조 요청일 수 있기 때문이다.
흉터 없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법
자해 충동은 파도와 같다. 거세게 밀려오지만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보통 20~30분 정도가 지나면 정점을 찍고 사그라든다. 이 시간을 버티는 기술이 필요하다. 변증법적 행동 치료(DBT)에서는 뇌를 속여서 진정시키는 'TIPP' 기술을 제안한다.
| 방법 | 실행 가이드 | 효과 |
|---|---|---|
| 차가운 자극 (Temperature) | 얼음물에 얼굴을 30초간 담그거나 아이스팩 대기 | 심박수를 급격히 낮추고 몸을 이완시키는 반사 작용 유도 |
| 격렬한 운동 (Intense Exercise) | 제자리 달리기, 팔벌려뛰기 등으로 숨차게 움직이기 | 공격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천연 엔돌핀 분비 |
| 박자 호흡 (Paced Breathing) | 4초 들이마시고 6초 내뱉기 반복 | 부교감 신경을 자극해 신체 긴장 완화 |
만약 당장 멈추기가 너무 힘들다면, 붉은 사인펜으로 긋거나 고무줄을 손목에 튕기는 대체 행동으로 피해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혼자 끙끙 앓지 마세요
자해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멈추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뇌의 회로가 이미 자해라는 해결 방식에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이 있다. 2024년부터 통합된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는 24시간 무료로 전문가의 상담을 제공한다. 청소년이라면 1388이나 모바일 상담 앱 '다들어줄개'를 통해 텍스트로 편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
자해 흉터 때문에 사회 복귀를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한 흉터 치료 지원 프로그램들도 늘어나고 있다. 흉터는 부끄러운 낙인이 아니라, 치열하게 아픔을 견뎌낸 흔적이다. 이제는 그 아픔을 몸에 새기는 대신, 누군가와 나누며 치유해 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의 고통은 타당하며, 당신은 상처 없이도 충분히 괜찮아질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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